처음 만난 남자(성철수:32세)와 여자(김은지:30세). 한눈에 통했다. 친구의 소개로 떠밀리다시피 나온 자리였지만, 그녀는 그를 본 순간 자신도 준수한 외모와 깔끔한 매너, 생기 넘치는 유머에 한눈에 반했다. 남자 역시 그녀를 본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미니스커트 아래로 솟은 날씬한 다리와 그 위로 뻗은 화려한 몸매까지, 저절로 신에 대한 감사의 기도가 새어 나왔다. 한 눈에 통한 그와 그녀의 데이트는 술자리까지 일사천리로 진행 되었다. 기분 좋게 취한 남자, 여자에게 호텔로 가자고 권한다. 여자, 이 말에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낸다. ‘아니, 나를 어떻게 보고. 내가 그렇게 싸구려로 보였단 말이야?’ 정색하는 여자를 보며 남자는 당황한다. 술기운을 빌렸지만, 마음에 들어서 했던 말이었다. 즐거웠고, 그래서 밤까지 같이 보내고 싶은데, 그게 잘못이란 말인가? 여자는 남자의 그런 항의에 더욱 어이가 없다. 적어도 열 번은 더 만나야지 밤을 함께 할 거라고 선을 긋는다.
열 번이라는 말에 남자는 황당하다. 열 판 먹으면 한 판 더 주는 피자집 쿠폰도 아니고, 열 번을 만나야 하룻밤 잘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해괴한 숙박의 법칙이란 말인가? “처음이라 싫어요.” 같은 부드러운 넘김도 아니고, “결혼 전까지는 안 돼요.” 같은 정절의 다짐도 아닌, 열 번에 한번 이라니, 장난치나? 여자는 더욱 황당하다. 처음 본 날 “자자.”라고 말을 하는 뻔뻔함도 어이가 없는데, 거기에 더불어 방귀 뀐 놈이 성 낸다고, 자기가 화가 나서 뚱해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열 번은 그냥 생각나는 숫자일 뿐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말꼬리 잡고 매달리는 남자의 모습에 실망감이 밀려왔다. 낮에 봤던 그 매너는 뭐란 말인가? 쑈를 했나?
남자는 여자가 가볍게 보여서 했던 이야기는 아니었다.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더 깊은 인연을 만들자고 권유한 것에 불과했다. 남자의 이런 변명에 여자는 “풋”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농담하시나. 마음에 들었다면, 다음 만남을 위해 더 배려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냐? 그런데 쉬운 여자 취급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었다. 오늘 밤 살을 섞자는 남자의 요구에, 여자는 더 이상 말을 섞기가 귀찮아졌다. 결국. 바이~
두 사람은 처음 만난 사이였다. 아무리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남자는 지나치게 성급했다. 이 둘이 시작도 못해 보고 끝나 버린 것은, 섹스에 관한 관점 차이 때문이 아니었다. 섹스란 몸을 맞추기 이전에, 마음을 맞추는 행위라는 것을 잊어버린 저 남자의 비매너 때문이었다. 매너는 “무엇을 하는 행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때로는 “무엇을 하지 않는 행동”도 매너가 된다. 남자는 여자의 마음이 부드럽게 움직이기를 기다릴 줄 아는 배려의 매너를 발휘해야 했다. 그랬다면 남자가 첫 날 쌓으려 했던 인연보다 더 깊은 인연이 이어졌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