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라고? 글쎄.. 보통 사람들이라면 길길이 날뛰게 되는 천인공노할 상황이라 현실적이지 않게도 느껴지지만, 사실은 평범한 일상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이벤트다. 특히나 남녀가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게 되는 대학교나 학원 등에서는 틈틈이 발생하며, 복잡하게 얽힌 학교 애정 전선을 다채롭고 풍요롭게 만드는데 한 몫 하기도 한다. 사람 마음 팔아서 먹고 사는 대중가요가 이런 복잡 미묘한 상황을 피해갈 리 없다.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나 이승철의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는 이런 상황을 잘 묘사해 히트한 노래들이다. 명곡의 반열과 올드송의 대열에 동시에 합류한, 이 두 노래를 비교해 봄으로써, 연애에 대한 교훈을 찾아보도록 하자. 어쩌면, 비슷한 상황에 처해 난감해 하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대답이 될지도 모른다.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과 이승철의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의 가장 큰 차이는 능동과 수동의 차이다. 내가 당하면 ‘잘못된 만남’인 것이고, 내가 하면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가 된다. 그만큼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는 잘못된 만남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어느 여자 후배가 눈망울을 반짝이며 “이런 노래와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었다. 친구의 친구를 사랑하고 싶다니, 그런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고 싶다니, 화가 난 나는 “차라리 나를 사랑해 보는 것은 어떻겠니?”라고 100% 농담으로 물어 봤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배의 대답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 하고 싶지도 않다. 뒤끝이 안 좋았던 기억이 조금 날 뿐이다.-.-)
“눈 오는 날이던가 벤치에 홀로 앉아 그녀를 기다리다 친구의 친굴 만났네.”라고 시작하는 이 노래의 앞부분은, 이 노래의 주인공에게도 이미 여자 친구가 있음을 알려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친구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이 주인공의 갈등은 매우 심난하다. 친구의 친구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친구와의 우정과 지금 여자 친구와의 사랑’ 모두를 버려야 하는 것이다. 잘못된 만남에서 주인공이 “사랑과 우정을 모두 버려야 했기에”라고 울부짖었지만, 그건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의 이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잘못된 만남’은 욕이라도 안 먹지, 여기서는 욕도 같이 먹어줘야 한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맞을 수도 있다.(-.-) 결정적으로, 친구의 친구가 내 마음을 받아 줄지도 확실하지 않다. (보통의 경우라면, 거의 확률이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러기에 고민은 깊어지는 것이다. “동그랗게 큰 눈이 예쁘게 보이지만 친구의 친구기에 사랑할 순 없었네”라고 노래는 말 하지만, 그 속에는 이런 현실적인 고민들이 더해져 있는 것이다. “널 갖고 싶다고 말을 해볼까 차라리 눈 감고 뒤돌아서서 고백해 볼까” 라는 생각도 해 보지만, 안 되는 것이다. 결국 이 남자. 포기하게 된다. 친구의 친구를 사랑하는 일. 너무나도 어렵고 힘들다는 교훈을 남기고, 이 남자는 이 사랑을 그냥 가슴 깊은 곳에 추억으로 묻어두는 것이다.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에서의 설정은 사실 대수로울 것이 없는 것이다. 자기 혼자서 힘들게 사랑하겠다는데, 그리고 아무 짓도 안 했다는데, 그냥 마음속에만 담아 두겠다는데, 그걸 가지고 탓하거나, 문제 삼을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런데 잘못된 만남은 조금 다르다. 액션이 있었고, 반응이 있었다.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가 아니라 ‘내 친구가 내 여자친구를 사랑하고 있네.’가 되어 버리는 바람에, 복잡해진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 노래의 남자. 억울할 것이다. 친구가 여자 친구와 놀아나다니. 그것도 믿었던 자신의 친구와 말이다. 그런데. 이 노래의 주인공. 조금 부족하다. 둔하다고 할까. 과감하지 못하다고 할까. 2%가 채워지지 않은 느낌이다.
“난 너를 믿었던 만큼 난 내 친구도 믿었기에, 난 아무런 부담 없이 널 내 친구에게 소개 시켜줬고” 노래의 도입 부분이다. 시작부터 잘못된 만남의 불길한 전조가 보인다. 보통의 경우라면 여자 친구를 친구에게 소개시켜 줄 때 ‘믿고, 안 믿고’를 따진다거나, ‘부담감을 가지고’ 시작하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노래 속의 이 남자. 여자 친구를 자신의 친구에게 소개시켜 주기 전에 이미 마음에 걸려 하고 있다. ‘내 친구를 믿었기에 소개시켜 준다’는 말에는 ‘친구를 믿지 않았으면 소개 시켜 주지 않는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남자. 가만히 보면, 사랑하는 사람도 믿지 않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믿고 있다면, 친구를 소개시켜 주는데 있어서 친구에 대한 믿음은 크게 중요하지 않는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여자 친구가 내편이라면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남자, 친구도 믿지 못하고, 사랑도 믿지 못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믿음을 가질만한 사람들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조금 부족한 이 남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에서 두 사람을 서로에게 소개시켜 주다니, 그 뿐 아니라 “자주 함께 만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함께 어울”리기까지 하다니. 잘못된 만남을 스스로 만들어준 꼴이다.
이 남자. 마음이 아프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두 사람의 만남이, 잘못된 만남인 것은 꼭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본래 두 사람이 못 믿을만한 사람들이었다면, 빨리 정리되는 것이 훨씬 덜 아픈 일이 된다. 설령, 친구와 여자 친구가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는데 불구하고, 이 남자의 의심이 두 사람의 관계를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면, 이 역시도 미리 경험해 두는 편이 훨씬 바람직하다. 믿을 수 없다면 사랑하지 말 것이며, 친구로도 지내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과 교훈은 이 남자의 부족한 2%를 채워, 훗날 더 큰 사랑을 하기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 분명하다.
내 친구와 내 애인이 서로에게 사랑에 빠지는 일. 노래에서는 사랑과 우정이 같이 날아갔다며 슬퍼하던데, 실제로 당하게 된다면 그런 고상한 감정 따위는 느낄 여력이 없을 것이다. 사랑도 아니었고, 우정도 아니었다며, 그렇게 생각해 버리면 그만이니까.. 실제, 그런 사람들이 사랑이었고, 우정이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 상황이 피해자(?)에게 주는 고통은 오직 분노일 것이다. 처절한 배신감일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놈’이라는 주홍글씨를 ‘친구와 애인’에게 함부로 찍을 수가 없는 것이,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 같은 기분에서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듯,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와 ‘잘못된 만남’ 사이에는 많은 간격이 존재한다. 나에게 있어 ‘잘못된 만남’은 상대에게 있어서도 ‘잘못된 만남’일 수밖에 없다. 잘못된 만남을 극복하고, ‘잘된 만남’으로 가겠다는데,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움직인다는데, 그걸 하나하나 꺼내서 심판을 보기란 여간 어려운 노릇이다. 게다가 앞서도 말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당한 ‘나’에게도 교훈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성장통일지도 모른다. 성숙한 사랑을 만들기 위해 겪게 되는 번데기의 변태 과정일 수 있다. 사람들 사이의 감정인만큼, 다들 크게 마음 안 다치고 해결되길 빌어줄 수밖에. 더 멋진 사랑을 찾아 훌훌 날아가길 바라는 수밖에. 이 말들이, 비슷한 상황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을 향해 건네는, 이 글의 대답이다.
이 글은 KTF의 도시락(dosirak.com)에 기고된 글로, 외부 전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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